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후지타 모토시 (문단 편집) == 인물평 == 현역 시절의 경쾌한 투구 모습 이라던가 특유의 지적인 언행으로 일본 야구계에서 '''[[신사]]'''로 불리기도 했고, “투수 출신의 감독은 정신 야구의 본질로부터 동떨어지고 있다” 며 ~~까내리던~~ 지론하던 [[노무라 카츠야]]도 그의 저서에서는 감독으로서의 후지타에 대해 높이 평가한 바 있다. [[교진군]] 감독 시절 영입한 [[하라 타츠노리]]는 현역 시절 스승인 후지타에게 받은 은혜를 지금도 잊지 못하여 시간만 나면 종종 후지타의 묘소를 참배한다고 한다. 그런데 하라가 교진군 감독으로 돌아온 2006년, 후지타가 별세하면서 [[멘탈]]이 나가버렸고, [[고쿠보 히로키]]와 [[다카하시 요시노부]]가 드르렁 모드로 돌입하면서 팀 성적은 1위에서 단박에 최하위까지 급추락하는 곤욕을 치루었지만 시즌 막판 [[이승엽]] 혼자 타선을 [[하드캐리|멱살캐리]] 한 덕분에 그 해 최종 순위는 간신히 4위를 마크할 수 있었다. [[오쿠보 히로모토]]가 가장 존경하는 감독이기도 하다. 1992년 시즌 도중 [[요미우리 자이언츠]]로 이적한 오쿠보가 원정경기 도중 호텔 식당에서 홀로 [[다이어트]] 식단으로 식사를 하는 것을 본 후지타가 '''"야구선수는 몸이 재산인데 그렇게 부실하게 먹어서야 힘을 쓰겠느냐? 골고루 먹어야지"''' 라면서 [[스테이크]]를 한 접시 사 줬다고 한다. 어릴 때부터 과체중[* [[오쿠보 히로모토|항목]]에도 설명되어 있지만, 오쿠보는 은퇴 후 연예계에서 활동할 때 '''데이브 오쿠보(Dave Okubo)''' 라는 예명을 사용했는데 '''데이브'''가 바로 '''데부'''(デブ, 뚱보라는 의미)에서 따온 이름일 정도로 현역 시절 비대한 체구를 갖고 있었다(...).] 때문에 늘 감독들에게 식사에 관해 야단만 맞던 오쿠보는 후지타의 따뜻한 배려에 '''"후지타 감독님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바칠 수 있다"''' 고 속으로 되뇌이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고, ~~[[고기]][[느님]]의 위력(???)~~ 그 덕분인지 84경기 출장에 타율 0.277, 15홈런, 43타점으로 데뷔 후 최고 성적[* 비록 [[규정타석]] 에는 진입하지 못했지만, 오쿠보가 [[홈런]]을 친 날 요미우리는 거의 필승(必勝)이었을 정도로 뛰어난 적시타 능력을 자랑했다. 오쿠보가 5번 타자로 활약할 당시 3,4번은 1981년 입단 동기인 [[코마다 노리히로]]와 [[하라 타츠노리]]가 번갈아가며 맡았다.]을 기록하며 팀을 리그 하위권에서 2위까지 끌어올리는 데 일조하며 후지타의 기대에 크게 부응했다. ~~하지만 [[우승]] 아니면 [[육지 좆까|다 ㅈ까]]라는 [[교진군]] [[프런트]]의 방침 때문에 후지타의 해임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(...)~~ 이후 후지타의 사망 소식을 듣고 장례식장을 찾아온 오쿠보는 울다 지쳐 까무러치고 발인 때도 실신할 뻔 할 정도로 그의 죽음을 애통해 했다. [각주] [[분류:일본의 야구 선수]][[분류:니이하마시 출신 인물]][[분류:1931년 출생]][[분류:2006년 사망]] [[분류:일본야구전당 헌액자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